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북통일/수도 문제 (문단 편집) ==== 역사성, 정통성 ==== 우선적으로 서울은 '''한국사에서 수도로서 존속한 기간이 가장 긴 도시'''이다. 21대 492년 동안[* BC 18~서기 475] [[백제]]의 수도였고, 27대 510년 동안[* 1394~1399, 1405~1910] [[조선]] 및 [[대한제국]]의 수도였으며, [[일제강점기]]에도 한반도 행정중심지였고, [[미군정]]을 거쳐 1948년에 정식 수도로 선언된 이래로 2023년 현재까지 [[대한민국]]의 수도 역할을 하고 있다.[* 전쟁 기간에 임시적으로 [[대전광역시]], [[대구광역시]], [[부산]]으로 천도했지만 그때도 명목상 수도는 역시 서울이었다. 심지어 '''[[북한]]'''조차도 1972년까지 명목상 수도는 서울로 두었다. 북한도 은연중에 서울의 정통성을 인정한 것.] 이렇게 수도였던 기간을 합치면 도합 '''1077년'''으로, 992년의 경주[* BC 57~935][* 혹여 현재진행형으로 늘어나는 대한민국 수도 기간을 빼더라도 '''1002년'''으로 경주보다 10년 더 길다.]와 507년의 [[평양]][* BC 300?~BC 108, 427~668, 1948~현재. 더군다나 남한 주도 통일 하에서는 북한 수도였던 경력은 방해만 되지 도움이 전혀 안 된다. 다만 고려시대 '제 2 수도' 서경이 본수도 개경과 맞먹는 위상을 가지던 시기가 215년(921~1136) 정도 되기 때문에 이 기간을 포함해준다면 수도로 존속한 기간이 722년까지 늘어나긴 한다. 그런데 이렇게 따져도 서울이 한 수 위다. 이유는 후술.], 448년의 개성[* 901~905, 919~1232, 1270~1394, 1399~1405]을 압도한다. 또한 76년간 [[고구려]]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인 남평양이었으며,[* 475~551. 당시 [[고구려]] 수도 지명이 평양이었음을 상기하면 고구려가 서울 지역을 얼마나 중시했는지를 알 수 있다. 더군다나 본인들 입장에선 [[고국원왕|국왕]]을 죽인 숙적 [[백제]]의 500년 고도를 빼앗은 것이기 때문.] 약 250년간[* 1067~1076년 이후, 1104~1308, 1356~1392] [[고려]]의 부수도였고 [[우왕]]과 [[공양왕]] 시기 천도 실험 목적으로 각각 5개월씩[* 1382.9~1383.2, 1390.9~1391.2] 고려의 일시적 수도였던 적도 있다. 또한 한반도 4대 고도[* 서울, 평양, 경주, 개성] 중 개성과 함께 유이하게 한국사 메이저 5대 국가인 고구려, 백제, 신라, 고려, 조선에 모두 소속되어 있었다. 이 역시 한국사에서 서울이 가지는 크나 큰 정통성이다. 경주에는 고구려, 백제사가 부재하고[* 그러나 고구려의 전성기인 [[광개토태왕]]-[[장수왕]] 시절에는 고구려와의 연합으로 백제-왜-가야 연합군에 승리를 거둔 뒤 경주 근처에 고구려 군대가 주둔하는 등 고구려의 땅이 되진 않았어도 그 영향력 아래 있긴 했다.] 평양에는 백제, 신라사가 부재하며 개성에는 백제사가 부재하다.[* 물론 [[근초고왕]] 시기 백제가 일시적으로 개성과 황해도로 진출하긴 했지만 제대로 통치도 못해보고 바로 임진강변까지 후퇴한다.] 따라서 서울에는 5대 왕조의 유물이 모두 존재한다. 백제와 조선은 수도였으니 말할 필요도 없고 고구려 문화재로는 [[아차산 일대 보루군]]과 광진구 뚝섬 출토 금동불좌상[* 백제불이라는 견해도 있으나 고구려불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. 참고로 '''한반도에서 출토된 가장 오래된 불상이다!''']이 존재하며 신라 문화재로는 [[북한산 진흥왕 순수비]], [[아차산성]], [[서울 가락동-방이동 고분군|방이동 고분군]][* 논란은 있으나 신라 무덤이라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.], [[서울 삼양동 금동관음보살입상]][* 고구려나 백제 제작설도 존재하나 [[진흥왕]] 대 이후 서울 일대는 신라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신라 제작설이 가장 지지를 받고 있다.] 등이 있고 고려 문화재로는 도봉구 영국사지 금제강령[* 2012년 발견된 고려 금속 걸작품] 및 [[북한산]]의 고려시대의 마애불상군 등이 있고 [[경복궁]] 후원과 [[청와대]] 부근에 고려 [[남경 별궁]]지가 있었다. 게다가 역사적 위인들도 가장 많이 출생한 땅이기도 하다. 당장 '''한국사 위인 부동의 투탑'''인 '''[[세종대왕]]'''([[종로구|종로]])과 '''[[이순신]]'''([[중구(서울)|중구]])이 서울 출신 인물들이고 그외에도 백제 최전성기를 이끈 [[명군]]이자 [[한일관계]]의 서막을 연 [[근초고왕]]([[송파]])과 고려 구국의 영웅 [[강감찬]]([[관악구|관악]])도 서울 출신이다. 이외에도 서울 출신 역사적 인물들은 차고 넘친다. 일단 [[한성백제]]와 [[조선]] 왕족들은 거의 서울 땅에서 태어났다. 여기에다가 한민족 최대 유산인 [[한글]]이 창제되고 반포된 도시도 서울이다. 즉 '''한글의 고향'''. 이러한 이유들로 서울이 갖는 역사성, 정통성은 평양, 경주, 개성보다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